신앙에 대하여 _ 평론 (스포)

 사일런스는 17세기 가톨릭이 박해받는 일본에 목숨을 걸고 떠난 포르투갈 신부 이야기를 다룬다.기독교인 입장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않고 죽은 자의 희생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맹목적이었다. 각각의 ‘믿음’에 대해 고찰하게 해주는 이 영화는 비종교자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받아들여진다.

영화 초반에는 부감샷이 많이 쓰인다. 성당 계단을 내려가는 세 신부의 모습을 위에서 비추기도 하고 안개 낀 배와 자연을 위에서 촬영한다.신이 내려다보는 듯한 카메라 눈높이에서 신부들의 믿음이 굳건한 초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후반부로 갈수록 클로즈업 샷이 많아진다. 인간 가까이에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괴로워하는 신부들의 혼란을 뜻하는 것 같다.

배교했다는 스승 신부 페레이라의 소문이 믿기지 않아 직접 일본에 도착한 로드리게스와 갈페 신부.그들은 작은 마을의 주민들을 만난다. 그들 크리스천을 보고, 자신의 존재가 그들의 희망이 되는 것을 본다.신부들은 신의 존재를 느끼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한다.

그러나 이노우에 수령을 비롯한 천주교 박해세력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신뢰를 흐트러뜨린다.인상적이었던 것은 신체적 협박보다 거친 불씨를 슬기롭게 심어주는 이들의 행태다. 일본스러운…신도와 신부를 밀고하면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에 떨 뿐이다.

수령은 순교를 자청하는 자 4명이 나오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을 무작위로 데려간다고 한다.타자이자 신부들의 가이드를 맡은 배교자 「요시지로」가 지명되었다.영화는 시종 정적이지만 감정과 의심이 폭발하는 장면이 많아 지루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보게 된다.

형식적인 예수님 얼굴 밟기 의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신도들의 말씀에 두 신부는 다른 지시를 내린다.로드리게스는 밟으라고 하고, 가르페는 밟으면 안 된다고 한다. 비록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신부님들은 신도들에 대한 생각을 똑같다.나중에 로드리게스는 바다에 빠져 죽는 신도들을 보고 제발 살기 위해 배교하라고 울고, 가르페는 나를 대신 죽이겠다며 신도들과 함께 죽는 것을 택한다.

이미 한 차례 배교를 한 깃발 지로는 위협 앞에서 쉽게 예수를 버리지만 나머지는 십자가에 침을 뱉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파도에 내던져지는 형벌을 받는다. 파도에 숨이 막히면서도 나흘째 찬송가를 부르고 천주를 외치는 신도들을 보며 신부들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로드리게스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흡사하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던 적에게 붙잡혀 고난을 당한다.성경에 은화 30냥에 예수를 판 유다가 있다면, <사일런스>에는 은화 300냥에 로드리게스를 판 요시지로가 있다.( 「키치지로」는 끝없이 배교와 회개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 인간 지질의 일면을 나타낸다.로드리게스는 이렇게 비열하고 비열한 자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야 할지 고민하지만, 신부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여 그를 용서한다.)

예수도 죽기 전에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느냐”고 회의적으로 로드리게스도 신에 대해 묻는다. 스승이었던 페레이라조차도 “늪과 같은 일본에는 가톨릭이 뿌리내릴 수 없다”며 배교를 권한다.기독교인들이 숨져가는 신음소리는 믿었던 로드리게스의 영혼을 파괴하고 갉아먹는다.이노우에는 로드리게스가 공개적으로 배교를 해야만 그들을 돕겠다고 위협한다. 신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갈구하지만 신은 여전히 침묵한다.

그렇게 들리지 않던 예수의 목소리가 배교하기 일보 직전에야 들린다.나를 밟고 신도들을 도와라 이것이 로드리게스가 배교하는 데 대한 자신의 합리화에서 들리는 착각이었는지, 진짜 예수의 목소리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로드리게스는 결국 배교를 택해 신도들을 구한다. 이후 그의 지난한 고행 같은 세월은 압축된다.이노우에는 로드리게스에게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이를 붙여 함께 살게 한다.이때 로드리게스는 영혼을 잃고 침묵만 지킨다. 배교행위를 할 때도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다.

가톨릭교 등은 까맣게 잊고 일본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천주를 부르지 않았다는 로드리게스.마지막 장면에서 로드리게스의 아내는 그가 품지 못하고 살던 작은 십자가를 죽은 그의 손에 쥐어준다.그는 완벽한 배교자로 평생을 위장하며 살다가 결국 속으로는 일인천주를 품고 침묵을 견뎌왔음이 드러난다.지나치게 농축된 감정이 전달되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나는 침묵에 기도하는가로 설명된다.사람들은 신을 믿으면서도 때로는 회의에 빠진다.신이 있다면 왜 선인의 고통을 방관하며 악인의 세상은 변하지 않는가.

<사일런스>는 이에 대한 통찰이다. 그래서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의 중립자적 태도로 이야기를 들려준다.기독교를 선도하려는 사람의 감성과 비 기독교인(토착민)의 선교를 거부하는 논리 모두 납득하고 그린다.

기독교는 많은 나라에 뿌리내렸다.한국에서도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지만 결국 주류 종교가 됐다.그러나 일본에는 토착 종교세력이 워낙 강해 신도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모든 나라에 한 종교가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부들은 진리를 추구했기 때문에 진리가 어디서나 통용된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천주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영화는 제목 사일런스처럼 계속 침묵을 유지한다.배경음을 쓰지 않고 말소리와 자연의 소리만 들리고 신용이 올라갈 때는 풀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린다.침묵이 그 어떤 소리보다 고통스럽고 두려울 수 있음을 새삼 일깨운다.보는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영화지만 여운이 강하고 연기가 모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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